책 | “레비나스 타자를 말한다.” – 타인에 대한 정의와 관점

우리는 흔히 상대방과 자신을 구분할 때 자아와 타자라는 단어를 쓰곤 합니다. 이는 명확하게 주체를 구분하기 위한 단어인데 이를 두고 철학자들마다의 정의는 다른 듯 하지만 결국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분지음이라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기준으로 내가 아닌 사람은 모두 타자 혹은 타인으로 지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자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해석하며 타자의 범위를 죽은 자의 범위까지도 포함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생과 사를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범위에는 생과 사의 범위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생존해 있는 존재들만을 두고 자신과 타아를 구분 짓기 때문에 죽은 자까지 고려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관이나 정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먼저 이 책의 기준점인 레비나스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이 책의 해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그에 대한 내용을 우선 파악해 보았는데요.
에마뉘엘 레비나스(1901~1995)는 윤리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끌어올린 20세기 대표 철학자이며, 그는 자아란 먼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타인에게 책임지는 존재라고 말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즉, 타인의 얼굴 앞에서 이미 책임을 자신이 지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는 1906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포로 생활을 하기도 하였으며 가족들은 홀로코스트로 희생을 당하였다고 하는데요. 이런 배경들이 그의 철학이 결국 타자, 책임, 윤리로 수렴되는 결정적이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핵심 사상은 3가지로 구분지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얼굴(Le Visage)
레비나스의 얼굴은 단순한 생김새가 아니라 타인의 취약함이 나에게 폭력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윤리적 사건이라고 합니다.
- 얼굴은 나를 심문한다. : 너는 나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 그래서 윤리는 규칙이 아니라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2. 타자(The Other)
서구 철학이 나(주체)를 중심에 두었다면, 레비나스는 타자를 결코 나로 환원할 수 없는 존재로 둡니다.
- 타자는 이해, 지배,,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 타자를 존중한다는 것은 나의 기준을 내려놓는 일이다.
3. 책임이 자유보다 우선
일반적 사고 : 자유 -> 선택 -> 책임
레비나스 : 책임 -> 그 다음에 자유
- 나는 선택하기 전에 이미 타자에게 책임을 지고 태어났다.
- 이 책임은 계약도, 상호성도 필요 없다. (비대칭적 책임)
레비나스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 성과 효율, 알고리즘이 사람을 앞설 때,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지는가?
- 조직과 리더십에서, 타인을 수단이 아닌 얼굴로 보고 있는가?
- 사회적 약자, 난민, 소수자를 대할 때,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지는 않는가?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윤리, 리더십, 조직심리, AI윤리까지 폭넓게 인용됩니다.
그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먼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먼저 응답해야 하는 존재다.”
많은 철학책을 들여다보거나 철학자들의 연구를 눈여겨 본적은 없지만 몇몇의 내용들을 훑어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해가 갈 듯 하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기술에 있어 철학적 심오함도 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만한 깊이에 해당되는 고민과 사유를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책임”의 중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레비나스가 언급한 “응답’이라는 단어와도 연관성이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타인의 부름과 마주함에 응한다는 것은 자신이 타인에게 비춰지는 이미지나 발언하는 말, 그리고 행동에 있어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행동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에 대해서 마땅히 감수할 수 있어야 하며, 되도록이면 윤리적인 행동을 통해서 부정성이 아닌 긍정성이 더욱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우리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던진 질문을 통해 우리는 더욱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의 시대 성과와 효율, 알고리즘이 사람의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를 책임지는 것은 누구여야 하는가? 이는 사람이 아닌 기계 앞에서 상호 작용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존재론적 관점에서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당연히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조직과 리더십에서 타인을 수단이 아닌 얼굴로서 바라보고 있냐는 질문으 상호작용을 위해 서로 눈을 바라보거나 말을 섞음으로써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바라봄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죠. 마지막 질문에서 더욱 의미 심장한 내용들을 훑어볼 수 있는데요. 사회적 약자, 난민, 소수자를 대함에 있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는 입장으로 무시하고 외면하지는 않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3가지 질문은 곧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과 이어집니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타인에 대한 관심과 얼굴을 바라보며 혹은 서로의 언어를 섞으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움이라는 것이며, 그 속에서 자신의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닌 응답하는 존재로서의 ‘나’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기 확인을 통해 확신을 얻어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그의 철학을 이 글을 정리하며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발견하는 오늘 보내 보시는 것은 어떠실까요?